주식과 채권을 일정 비율로 담는 채권혼합형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순자산 10조 원을 돌파하며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퇴직연금 계좌에서 100% 편입이 가능하다는 점을 앞세워 자금이 몰리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동시에 담은 채권혼합형 ETF까지 등장하며 상품 구조가 진화하고 있습니다.
20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KB자산운용은 이르면 이달 중 'RISE 삼성전자SK하이닉스채권혼합50'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이 상품은 국내 시가총액 1·2위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각각 25%씩 총 50% 편입하고 나머지 50%는 단기 국고채 및 통안채에 투자하는 구조입니다. 국내 증시 대표 반도체 대형주 두 종목을 한 번에 담으면서도 채권으로 변동성을 완충하는 전략입니다.
해당 상품은 글로벌 메모리 시장 점유율 합산 약 7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채권혼합형 ETF로 한 데 묶은 첫 상품입니다.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업황 개선 기대가 커지면서 두 기업의 성장성을 연금계좌에서 안정적으로 가져가려는 수요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국내 증시 호황과 맞물려 주식 비중을 최대한 늘려리는 연금 가입자들의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채권혼합형 ETF 시장도 빠르게 불어나는 추세입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채권혼합형 ETF 순자산총액은 2024년 말 2조 5604억 원에서 2025년 말 8조 889억 원으로 1년 만에 6조 가까이 급증했습니다. 전일 기준으로는 10조 5741억 원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 10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상품별로 살펴보면 코스피200 지수에 40%, 미국채 10년물에 60% 투자하는 KODEX 200미국채혼합(1조 2053억 원)이 가장 규모가 큽니다. ACE 미국S&P500미국채혼합50액티브(9068억 원), KODEX 삼성전자채권혼합(7326억 원), TIGER 테슬라채권혼합Fn(6643억 원)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시장 확대의 배경에는 증시 호황과 맞물린 퇴직연금 운용 규제가 있습니다. 현행 감독 규정상 개인형 퇴직연금(IRP)·확정기여형(DC) 계좌에서 주식 등 위험자산 비중은 70%를 초과할 수 없습니다. 나머지 30%는 예·적금, 채권 등 안전자산으로 채워야 합니다. 반면 일정 비율 이상을 채권으로 편입한 채권혼합형 ETF는 안전자산으로 분류됩니다. 이를 활용하면 계좌 전체를 채권혼합형 ETF로 채워 사실상 위험자산 비중을 7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식과 채권을 50%씩 담은 채권혼합형 ETF를 안전자산 몫으로 담으면 주식 비중이 최대 85%까지 높아집니다.
이에 운용사별 채권혼합형 ETF 전략도 다양화되었습니다. 기존 지수형(S&P500·코스피 등)에 채권을 섞은 상품에 더해 커버드콜 채권혼합, 금 채권혼합 등 선택지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한화자산운용은 지난해 12월 금과 국고채 3년물에 각각 50%씩 투자하는 'PLUS 금채권혼합'을 출시했습니다. 해당 상품에는 상장 이후 1543억 원이 유입되었습니다.
육동휘 KB자산운용 ETF상품마케팅본부장은 "퇴직연금에서 ETF 투자가 증가하면서 주식 비중을 늘리려는 수요가 늘고 있습니다"며 "채권혼합형은 주가 상승에 대한 리스크 비중을 축소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안전합니다"고 짚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