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 법제화, 한국 디지털 자산 시장의 새로운 장을 열다

실리콘밸리에서 블록체인 스타트업을 취재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그들은 부동산이나 미술품 같은 실물자산을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 누구나 투자할 수 있게 하는 ‘토큰화’의 미래를 열정적으로 이야기했지만, 한국에 돌아와 관련 업계 관계자를 만날 때마다 들었던 말은 “법적 근거가 없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문턱이 허물어졌습니다.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STO 법안이 한국 디지털 자산 시장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STO, 즉 토큰증권발행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부동산, 미술품, 저작권 등 기존에는 거래가 어려웠던 비유동성 자산을 디지털 증권으로 전환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변화를 넘어, 자산의 유동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소액 투자자에게도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금융의 패러다임 전환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새로운 자산 클래스가 등장할 때마다 초기에는 법적 불확실성에 시달리기 마련인데, 이번 법제화는 그런 진통을 해소하는 결정적 첫걸음입니다.

이번에 통과된 자본시장법과 전자증권법 개정안의 핵심은 기존 금융 제도권 안에 토큰증권을 공식적으로 편입시킨 데 있습니다. 토큰증권을 전자증권으로 인정하고, 발행과 유통을 위한 명확한 규칙을 마련했습니다. 특히 장외거래중개업을 신설해 플랫폼을 통한 거래를 가능하게 한 점은 실질적인 시장 활성화를 위한 토대가 됩니다. 업계 한 관계자의 말처럼 “트랙에 올라탄 점은 다행”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법제화의 효과는 막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30년까지 국내 STO 시장 규모가 현재 추정치의 10배 이상인 367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14.5%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단순히 금융자산을 넘어 미술품, 음원, K-콘텐츠 같은 비금융 자산이 시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기술이 단순히 효율을 높이는 도구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자산 시장을 창출하는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새로운 길이 열렸다고 해서 모든 것이 순조로울 것만은 아닙니다. 제도가 본격 가동되기까지는 시행령 개정 등 추가적인 절차가 필요하며, 이는 최소한 내년 하반기까지 시간이 소요될 것입니다. 또한, 기존 조각투자 시장의 구조가 발행 플랫폼과 유통 플랫폼으로 분리되면서, 투자자들은 추가 계좌 개설 등의 불편함을 겪을 수 있습니다. 업계 또한 발행인 계좌관리기관으로 등록하기 위한 구체적인 요건이 시행령을 통해 명확해져야 대응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한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 관계자의 우려처럼, 시행령에서 투자 한도나 거래 규제가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설정된다면 시장의 활성화는 더디어질 수 있습니다. 기술 혁신의 속도와 규제 정비의 속도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은 전 세계적 과제입니다. 한국이 이번에 법적 기반을 마련한 것은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이제 그 위에 건강하고 활발한 시장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다음 관문입니다.

결국, STO 법제화는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 금융의 본질적인 기능인 ‘자본 배분’과 ‘유동성 창출’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실리콘밸리에서 들었던 그 열정적인 이야기가 이제 한국의 법적 토대 위에서 현실로 구현될 수 있는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 보호와 시장 안정성을 확보하면서도 혁신을 가로막지 않는 지혜로운 규제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원문: [본미디어](https://www.bonmedia.kr/news/articleView.html?idxno=5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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